간사이 여행기 둘째날. 이번에는 교토로 갑니다.
사실 간사이로 여행 가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교토 때문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저는 교토를 좋아합니다. 현대식 상점들과 전통적 상점들이 섞여 있는 광경이라던가, 나즈막하고 고풍스러운, 그러면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들 사이 골목길들을 돌아다니는 게 좋습니다. 물론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 허름한 곳은 참 허름하고, 교토 답지 않은 고층 백화점들과 번잡한 쇼핑가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이 한데 얽혀서 교토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죠.
뭐 그리하야, 교토에 가기 위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서서 우메다로.
우메다에서 한큐선 전철을 타고 특급이면 40분 정도 걸려서 가와라마치 역에 도착하는데, 시간표 대로라면 이미 특급은 떠났고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태.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이미 출발했어야 하는 열차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더군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선로 문제로 앞 열차가 연착해서 시간표가 틀어졌다고...뭐 덕분에 좀 덜 기다려서 특급을 탔습니다만 사람이 많아서 복잡했습니다.
가와라마치 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니시진으로.
니시진은 행정구역으로 정해진 곳이 아니라, 대충 동서로는 호리카와도리에서 시치혼마치도리까지, 남북으로는 쿠라마구치도리에서 나카다치우리도리까지라고 일컬어지는 동네입니다.
지도를 보면 대충 이 정도 구역이 되겠죠. 유명한 관광지는 별로 없습니다만 옛부터 내려 오는 전통 가옥인 마치야(町家)들이 많이 남아 있고, 니시진오리(西陣織)라는 비단 직물이 유명한 동네입니다. 근처에 음양사로 우리나라에서 제법 알려진 세이메이신사도 있고, 교토 교엔이나 니죠 성도 가까우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들러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우선 니시진오리 회관에 들러 봤습니다. 니시진오리 회관은 이름 그대로 니시진오리의 홍보, 전파를 위한 곳으로, 각종 비단 직물들의 전시 및 판매, 장인들의 시연 등을 하고 있습니다. 니시진오리로 만든 기모노 패션쇼도 한다고 하는데 저는 시간이 안 맞아서 보진 못했네요.
위의 조형물은 토호쿠 대지진 피해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실제 니시진오리를 만드는 누에고치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아래쪽에 그려진 묘한 생물은 마스코트인 마유마로(고치동자?) 입니다.
이런 방직기라던가.
이런 누에고치 공예품들이 전시 및 판매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메인 전시품은 직물들이었는데 사진을 안 찍었네요? 무슨 생각이었지? -_-;;
회관을 나와서 니시진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사 먹은 미소경단. 달콤짭쪼름한 게 군것질거리로 딱이더군요. 한 개 120엔.
경단을 초묵초묵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다 멋진 문이 보이길래 가 봤더니 혼류지라는 절이었습니다.
설명을 보니 꽤 명망있는 절이고 문화재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인데, 이 근처가 딱히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다른 유명 절들처럼 관광지화 되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정말 동네 절 느낌?
본당은 되게 멋집니다만 안에는 들어갈 수 없게 닫아 놓았습니다. 본존을 뵙고 싶었는데 아쉽. 이쪽이 본당 뒷편.
이쪽이 정면.
본당 앞에 차도 서 있고.
자그마한 범종 주위에도 주차장처럼 차들이...구경하는 중에도 동네 주민분들이 경내를 통해서 오가는 걸 보면 정말 동네 절인가 봅니다.
니시진 한 켠에서 본 집들. 저렇게 꼭 닮은 예쁘장한 집들이 나란히 서 있으니 재미있더군요. 이쯤부터 햇빛과 함께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필 왜 이런 날 여우는 시집을 가는지...
마치야 공방 골목. '뒷골목 연화'라는 아소 마코토씨의 만화를 보신 적 있는 분은, 거기 나오는 공방들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민가와 공방들이 모여 있는 곳. 제가 갔을 때는 다른 곳들은 문을 안 열었고, 벌꿀 전문점 도라토(ドラート)만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골목 안쪽의 왼쪽 가게입니다. 사진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도라토 내부. 종류별로 꿀도 팔고(아래쪽 사진), 각종 꿀 절임이나 잼, 꽃가루 등도 팔고 있습니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의 병에 들어 있는 게 전부 꿀인데, 다 다른 종류의 꽃에서 나온 꿀입니다. 저렇게 종류가 많은 줄은 처음 알았네요. 개중에는 꽃에서 딴 꿀이 아니라, 진딧물이 나무 수액을 먹고 분비한 꿀을 채집한 것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다른 꿀과는 향이나 풍미가 다르더군요.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주인 아주머니(누님?)께서 위쪽의 하얀 병에서 조금씩 시식용으로 따라 내어 맛보게 해 주시고, 설명도 자세하게 해 주셨습니다. 선물로 뭔가 사 가려고 알아 봤는데 처음 추천해 주신 180g당 3,800엔(!)짜리 장미 꿀은 아무래도 엄두가 안 나서 다섯 가지가 100g씩 들어 있는 선물 세트를 샀습니다.
요런 세트입니다. 빨간색 사다리꼴(사진으로는 알기 힘들지만) 상자에 dorato 라는 로고가 찍혀 있는 심플한 선물세트. 원래는 포장이 되어 있어서 좀더 예쁘긴 합니다만...
꺼내 보면 이렇습니다. 종류에 따라 확연히 색도 질감도 다르죠. 양이 제각각인 건 이미 좀 따서 먹었기 때문입니다 -_-;;;
선물할 것도 사서 가게를 나서는데...들어갈 때보다 비가 조금 더 오고 있더군요. 여전히 햇빛은 나면서...-_- 되돌아가서 비라도 좀 피하고 있을까 했지만 그리 많이 오는 건 아닌데다 시간 절약을 위해 그냥 좀 맞으면서 다니기로 했습니다.
마을 한 켠에서 본 불단. 돌맹이에 물감으로 부처님을 그려 놓은 것이 척 봐도 아이들 작품이라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식사 때가 살짝 지나서, 비도 피할 겸 요기도 할 겸 들른 카페 사라사의 런치 샌드위치 세트. 카레 풍미의 마요네즈로 양념한 샌드위치와 샐러드, 스프, 웻지 포테이토와 음료(커피는 100엔 추가)가 나오는 세트입니다. 이렇게 해서 900엔.
저 때가 오후 두 시 정도에다 꽤 걸은 뒤라 배가 제법 고팠는데도 결국 포테이토는(사진에는 잘 안 보이지만 샌드위치 뒤로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다 못 먹고 남겼습니다. 일본 사람들 적게 먹는다는 거 다 거짓말이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음으로 찾은 곳은 금각사 입니다. 왜 西陣은 니시진이고 竜安寺는 료안지인데 金閣寺는 금각사냐면...그냥 부르기 편하니까요 -.-;;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금각사랑 은각사 표기가 똑같아져서 괜히 귀찮기도 하고. -.-
아무튼 금각사입니다. 이 때쯤엔 비도 그치고 햇빛도 좀 더 나서 저 금각이 아주 눈이 부시더군요.
뒤쪽에서 찍어 본 금각. 저 금박 떡칠된 건물 관리하려면 연간 예산이 대체 얼마나 들까요...
금각 주변 연못에 고고하게 서 있던 새 한 마리. 추워 보였습니다.
금각 주변 연못 풍경. 겨울이지만 아직 불긋불긋한 단풍잎들도 제법 남아 있어서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료안지입니다. 료안지 하면 역시 이 돌정원이죠. 여기 오는 건 세 번째지만, 올 때마다 이 돌정원은 묘한 느낌이 듭니다. 괜히 이 자그마한 정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게 아니다 싶기도 하네요.
파노라마도 한 번 찍어 보고. 끝부분의 여성분께는 죄송합니다 ;;; 본의 아니게 파노라마에 찍혀버려서...;;;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 주지스님이 기거하시던 방인 방장(方丈)에 그려진 그림들. 저 그림들 하나하나가 다 문화재라고 하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기증했다는 돌. 가운데의 네모를 글자의 일부분으로 보면 吾唯足知, '나 그저 만족함을 알다' 가 되는, 돌 자체가 일종의 선문답입니다.
돌 정원과 함께 유명한 료안지의 회유식 정원. 이미 한겨울이지만 아직도 불긋불긋한 나뭇잎들이 남아 있어서 정취가 있습니다. 고즈넉한 정원을 따라 걷는 것도 기분 좋았습니다.
이쯤에서 슬슬 날도 어두워지길래 오사카로 귀환. 난바 파크스로 갔습니다. 목적은...
...넵 오덕.
난바 파크스 시네마에서 상영 중이던 케이온! 극장판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 극장은 어떨까 하고 두근두근 했는데 의외로 우리나라 멀티플렉스하고 별반 다를 것도 없어서 조금 김이 샜...아 확실히 다른 게 있긴 했네요. 관람료 라고. 기본 관람료가 일반 1,800엔...그나마 화요일에는 1,200엔으로 할인해주는 덕에 화요일을 노려서 갔습니다. 위의 팜플렛은 별도 판매하는 것으로, 800엔.
팜플렛이 비싸긴 하지만 37페이지나 되는 올컬러 화보+설정집 역할까지 하는 터라 돈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행사 기간 중이라 이런 엽서도 주더군요.
런던에서 유이가 썼다는 설정의 엽서(...).
영화 자체는...뭐 좀 전개가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즐거웠습니다. 무려 처묵처묵 장면보다 연주 장면이 더 많이 나와요! 이럴 수가...
영화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니 11시경. 대충 정리하고 일본에서의 둘째 날을 마감했습니다. 사흘째도 교토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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